언론보도

'워커홀릭' 홍연정 원장의 '웨스턴 동물의료센터' 성공기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0-12-20 15:31:30 조회수 735

한국 증권 신문, ​홍연정 원장님 인터뷰

워커홀릭’ 홍연정 원장의 ‘웨스턴 동물의료센터’ 성공기

 

얼마 전 한국 증권 신문에서 홍원장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는 신촌역 5번출구에 위치한 웨스턴 동물병원에서 매우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는데요. 인터뷰 속에서 홍원장님의 철학과 지난 날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답니다. 규모와 전문성에 있어서 국내 최고 수준인 2차 전문진료 병원 '웨스턴 동물의료센터'의 홍연정 원장님은 자신을 두고 ‘워커홀릭’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과거 여러 차례 ‘미녀 수의사’로서 방송활동까지 했던 홍 원장은 보기와는 다르게 수술 경력만 17,000여건에 달하는 ‘전문가 중 전문가’시죠.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어 보이는 홍 원장님은 “우리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며 연신 미소를 지으셨어요. 하지만 이런 웃음 뒤에는 피땀 어린 노력이 숨어 있었는데요.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수의사 홍연정 원장님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합니다!

 

홍원장님 인터뷰 내용

STEP 1

병원 규모는?

▲수의사 선생님이 26명 정도 있고 일반 스텝까지 하면 50여명 정도다. 진료는 매달 2,000 건 정도보고 있다.우리 병원은 2차 병원이기 떄문에 환자의 70%가 다른 병원에서 들어오는 환자다. 응급환자나 난치병 환자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감정노동이 심한 편이다. 아무래도 가족 같은 반려 동물이 생사를 오가는 상황인 경우가 많아, 찾으시는 분들이 예민하다. 그래서 우리 동물 병원은 특별히 실력 있는 수의사 선생님들만 고집한다. 경력도 많아야 하고 수술 경험도 있어야 한다. 실제로 실력이 부족하면 본인이 업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병원은 규모도 규모지만 수의사 선생님들의 실력에 가장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2차 동물 병원이 뭔가?

개인 병원에서 시설이나 수술 난이도 등의 문제로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을 맡는 곳이다. 2차 동물 병원을 표방하는 곳은 많지만 이렇게 전 분야에 대해 종합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내가 알기로 서울에는 5군데 정도 밖에 없다.

 

 

경력이 화려하다. 수백 건의 강의에 방송 출연까지 했다.  

 

▲처음 방송을 출연한 것이 2002년이다. 당시는 석사학위를 마치고 첫 병원에 근무할 때였는데 지인을 통해 출연제의가 왔다. KBS ‘주주 클럽’이란 프로그램에서 공동 MC를 맡았었고, ON STYLE 채널의 ‘싱글즈 인 서울’에도 출연했다. 이 후에도 SBS 동물농장, KBS VJ특공대 등 인터뷰나 방송 출연한 것까지 전부 따지면 100건도 넘는다. 일단 매체에 노출이 되고 나니 찾는 곳이 많이 생기더라. 부탁해오는 자리를 웬만하면 거절 안하다보니 강의할 일이 많았다.

 

 

STEP 2

 

단순히 ‘스타 수의사’라기에는 수술 경력과 강의 경력이 많다. 양립이 가능했나?

▲ 전문직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같다. 일을 제대로 하려면 미쳐야 한다. 나도 그랬다. 하루에 16시간에서 20시간까지를 병원에서 보내고 잠깐 눈만 붙이고 다시 병원으로 나왔다. 말하자면 ‘워커홀릭’이다. 지금도 원장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진료를 보고 수술을 한다. 지금까지 수술 경험을 따져보니 17,000건이 넘는다. 확실히 '편한 직업'은 아니다. 특히 임상 쪽이 치열하다. 하지만 충분히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워커홀릭’에 빠진 계기가 있나?

▲사실 나는 대학교 초반에는 ‘꽃무늬 레깅스’를 입고 다녔다. 당구장 좋아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 좋아하는 그런 철부지 대학생이었다.지금도 그 당시의 나를 아는 선배나 친구들은 “네가 임상 쪽으로 갈 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학원 때 어머님께서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다. 그때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전까지는 어머니와 대화가 많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하느라 바빴고 대학 때는 노느라, 대학원에서는 다시 공부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그 후 1년 간 어머니와 정말 많은 대화를 했다. 그때까지 살아온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내 어머니는 굉장히 똑똑하시고 재능 있는 분이었다.

하지만 ‘여자’라는 것에 매여 많은 것들을 포기하셨다. 물론 그 당시 시대상이라는 것도 한몫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내’보다는 ‘홍연정’으로 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다. 결국 어머니는 1년여 만에 돌아가셨고 그 때부터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어머니 생각이 나서 괴로운 것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내 인생을 살라’고 해주신 말이 강박처럼 뇌리에 새겨진 것이다. 아직도 그 영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 같다.

 

‘싱글즈 인 서울’에서 미혼 전문직 여성으로 출연했었다. 지금은 가정이 있나?

 

▲그렇다. 남편은 변호사고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이 하나 있다. 가족들에게 항상 미안하다. 하지만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나’보다 ‘수의사로서의 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다만 근 몇 년간 업무량은 거의 줄지 않았는데 일이 능숙해지다보니 조금씩 개인 시간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아내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남편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남편 복이 있는 것 같다.

 

 

STEP3

남편은 어떻게 만났나?

남편은 내 형부의 동아리 후배였는데, 형부 아는 사람이라서 간단하게 답변을 했다. 남편의 홈피에 들어가 ‘ㅋㅋ’ 두 글자 남기고 왔다. 그러니까 일촌신청이 오더라. 이 후로 쭉 연락을 하다가 결혼까지 하게 됐다. 결국 형부가 자기도 모르게 우리를 연결해 준 셈이다.

 

 

수의사로서 힘든 점은?

▲사실 수의사 선생님들 중에는 대학교를 선택할 때 수의사와 의사 사이에서 고민하다 수의과로 온 경우가 많다. 보통 감성적인 사람들이 수의사를 택하더라. 게다가 수의사가 감정노동이 심한 직업이다. 그리고 오시는 분들은 정말로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 분들을 위로하는 것도 수의사의 몫이다. 수술이나 진료 등 업무 난이도 자체도 만만치 않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은 또 다르다.

 

 

현직 수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유명한 성공 케이스다. 비결은?

▲사실 처음에는 병원을 차리는 것이 목표는 아니었다. 그저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의료를 제공하고 싶었을 뿐이다. 처음 병원을 개원할 때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인원들을 하나씩 늘리다보니 이렇게 규모가 커졌다. 비결이라면 역시 사람이다. 경영전반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정말 너무 어려웠다. 나는 수의사지 전문 경영인이 아니니까. 다행히 오래전부터 일을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일을 많이 봐주시고 계신다. 덕분에 운영이 잘 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정말 고마운 분이다.

그 외에도 모든 일이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전문직은 특히 더 사람이 중요하다. 우리 병원의 경우 실력 있는 수의사가 필수적이고 그 선생님들께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해주려고 노력한다. 또 반려동물이 다치거나 아파서 찾아오시는 분들도 얼마나 상심이 크시겠나? 언제나 우리 병원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하고 있다.

 

수의사 후학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근 15년 새 수의사가 두 배로 늘었다. 광복부터 2000년까지 배출된 수의사만큼이 15년 만에 늘어난 것이다. 수의사를 포함한 전문직이라면 자기분야에 대해 남들보다 많은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노력에 비해 사람들 인식이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사실 나에게는 정말 보람 있고 만족스러운 직업이지만 내 아들이 수의사를 하겠다고 하면 선뜻 응원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 수의사를 시작하는 후학들에게는 사명감과 보람을 찾아 최선을 다하란 응원을 보내고 싶다.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P